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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Tea Story

저의 차 선생님 이야기 1/1 - "한국 차 선생님"

제게는 두 분의 차선생님이 계셔요.

한국 차와 다례(茶禮)를 가르쳐 주신 한국 차 선생님, 그리고 중국 차와 다예(茶藝)를 가르쳐 주신 중국 차 선생님이십니다. 제게 이 두 분은 더할 수 없이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시는 스승님들이십니다.

 

공교롭게도 두 분은 동갑이셔요.

그리고 두 분 모두 차와 차 문화에 대한 조예가 깊으시고, 제자를 아끼시는 마음이 너무나도 큽니다.

꾸미기 위한 찻자리나 실력 없이 허황된 말로 눈속임하는 것을 못 참으시는 것도 정말 비슷하셔요.

그런데요, 

두 분 선생님의 성향과 철학이 극과 극으로 다르셔요. 

 

저는 대만에서 차를 처음 접할 기회를 가졌기때문에 첫 시작은 중국차입니다.

하지만 정식으로 차 수업을 듣고, 차 선생님을 모시고 시작한 공부는 한국 차 공부였어요. 그러므로, 저의 첫 번째 차 선생님은 한국 차 선생님이셔요. 

오늘은 먼저 저의 한국 차 선생님 이야기를 조금 해드리려고 합니다.

 

한국 차 선생님께서는 늘 우리나라 고유의 색감과 멋을 보여주시는 한복을 곱게 입고 수업을 해주십니다.

선생님께서 한복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은 화려하여 상대를 압도하는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이 알려주는 계절의 변화를 읽고,

거기에 순응하는 우리 선조들 삶의 지혜를 보여주는,

단아하고 기품이 흐르는 우리의 한복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몰라. 하늘의 높이가 변하고, 나뭇잎 색이 변하고, 피는 꽃이 달라지는 것을 못 느껴.

일에 쫓기고 정신없이 살면서, 계절도 못 느끼고 살아가는 것 같아.

계절이 변하는 것을 알려줘야 정신을 차리고 살아가지.

안 그러면,

금방 지쳐서 못살아."

 

"내가 입는 한복의 색은 우리나라 자연의 색이야. 지금 사람들은 우리나라 고유의 색을 몰라.

창덕궁에 가면 우리나라의 색이 좀 남아있지. "

 

"뭐가 어렵다고.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실개천을 보면 보이지.

그냥 그렇게 자연이 보여주는 그대로 따라 입으면 되는 거지."

 

 

우리나라 발효차 "천지향"

 

 

저의 한국차 선생님께서는 따뜻하면서도 심지 굳은 옛 어른의 모습을 지니고 계셔요.

누구에게나 부러움을 살 정도의 사람이 와도,

속 안에 꽁꽁 싸매어 묻어 놓은,

곪은 상처를 찾아내어 위로해 주시는 혜안을 가지셨어요.

담담하고 담백하되 가차 없이 약을 발라주세요.

 

"차를 내어주면 자기네들이 다 얘기해.

내가 뭘 물어보나? 안 물어봐도 다 보이지.

차 마시러 오라고나 하지.

와서 차 마시다 보면 천천히 다 풀어져."

 

"차를 모르는 사람한테도 좋은 차를 내주어야지. 그래야 나중에라도 차를 알지."

 

"학생들한테서 돈을 벌려고 하면 안 되지. 차로 돈을 벌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제 한국 차 선생님의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90분이었던 것 같아요. 초급반 과정 3개월.

그런데 매번 좋은 차 우려 주시고,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 해주시다 보면 한 시간이 휙 지나가요. 그리고 시 한수 같이 읽다 보면 실제로 5인 행다를 배우는 시간은 아주 짧았지요.

그렇게 앉아있다 보면 다리도 저리고, 수업 진도는 안 나가고, 늘 같은 잔소리를 듣는 것 같고, 내가 왜 점심을 굶어가며 이렇게 미친 듯이 택시까지 타고 달려와서 이러고 있나 싶었어요.

그렇게 초급반만 두 번쯤 듣고 나니,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 왔어요. 

 

선생님의 모든 자태, 모든 찻자리, 모든 움직임, 모든 말씀이 다 최고의 수업이었던 거지요.

한 순간도, 한 공간도 빠짐없이 최고의 것들로 채워주셨던 것이죠. 보는 눈과 지혜가 없어서 몰랐던 거였어요.

선생님은 초급, 고급의 수준을 나누지 않으시고 첫 수업부터 그냥 다 최고의 것을 온전히 보여주고, 다 부어주시고 계셨던 거였어요. 

 

선생님의 찻자리는 매주 미묘한 계절의 변화까지 닮은 색상의 변화가 있었고, 그 계절의 꽃나무가 함께 했고, 이 모든 것을 조화시키는 다기와, 그 다기를 편안하게 제자리에 가게 만들어 주시는 선생님께서, 그 시간에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 줄 수 있는 차를 우려 주시는 날이었습니다.

 

수업 진도와 수업 시간이 산수처럼 맞아떨어지는 것에 익숙했던 저는 이런 귀한 모든 것이 처음부터 열려있는 수업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거였지요.

행다, 찻자리 꽃꽂이, 찻자리 음악, 찾자리 명상, 찾자리 글, 한복예절, 우리 차 문화 등등 모든 것을 다 보여주신 종합 예술의 처음부터 끝이 다 함께 있는 수업이었어요.

 

한겨울에 제가 해외로 출국하게 되었을 때, 우리나라 5인 다기세트를 챙겨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은 툭툭 불거지던 제 눈물샘을 꾹 막아버릴 정도로 놀랍고 감동이었습니다. 해외에 나가서 한국 차와 한국 차 문화를 널리 알리도록 노력해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들으며, 어깨가 무겁고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을 믿는 만큼 선생님께서 제자로 가르치신 저를 의심하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를 못 믿는다는 것은 저를 믿어주시는 선생님을 의심하는 거니까요.

 

선생님께서는 수업이 끝나면 꼭 제게 점심을 먹여 손수 운전하셔서 제 일터로 데려다주셨어요. 밑반찬을 만드셔서 밤늦게 퇴근하는 저를 기다려 제 집 앞까지 가져다주셨습니다. 배움에 목마른 저를 선생님 댁으로 불러, 주실 수 있는 모든 가르침을 그대로 다 내어 주셨어요.

선생님과 같은 땅에 있지 못하는 저는 여전히 배울 것이 많고, 끝없이 깊은 정성을 쏟아주시던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이런 정성과 사랑을 바탕으로 배운 저의 한국 찻자리는 아직은 많이 부족해도 그 방향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의 녹차가 가지고 있는 솔직하고 담백한 자연의 맛을 다치지 않게 정성으로 우려내는 찻자리,

움츠러든 사람이 편안하게 풀어지고, 삶의 순리와 지혜를 스스로 터득해 가는 찻자리입니다.

 

저의 한국 차 선생님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

오늘도 건강하고 기쁜 날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