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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꽂아볼까

꽃꽂이를 왜 하나요?

저는 꽃을 뾰족뾰족한 침들이 솟아있는 침봉에 꽂거나, 굳이 잘라서 화병 속 고인 물에 꽂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꽃을 보고 싶다면 산이나 들로 나가서 보고 오면 되지 왜 그렇게 꽃을 고문하고 있는 건지, 꽂혀있는 꽃들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안타까웠어요.

 

그렇게 나름 오랜 시간을 꽃꽂이에 대해 불편한 구석을 두고 지내오던 제가 꽃꽂이를 합니다.

생각이 바뀌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바뀌는 계기가 되는 일들이 있었어요.

 

저는 다도를 공부하면서, 차인(茶人)이 찻자리를 준비하는 과정에도 꽃을 꽃는다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어요. 차라리 화분을 가져다 놓으면 안 될까 하고 생각해 보았지요. 그래서 제 한국차 선생님께 여쭈어본 적이 있어요.

 

"선생님, 저는 차화(茶花-찻자리 꽃)를 보면 미안하고 불편해요. 생명을 꺾어서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는거 아닐까요?"

 

"그래요? 그렇지만, 이 꽃들은 이미 그러려고 태어난거에요. 어차피 그렇게 태어났으면, 충분히 아름답게, 최대한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그 아름다움을 뽐내도록 해주는 것이 돕는 것 아닐까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저는 꽤 오랫동안 생각에 빠졌던 것 같아요.

선생님 말씀처럼, 꽃시장의 꽃들은 농가에서 재배되어 판매되고 있지요. 이 꽃들은 그런 숙명으로 태어났네요. 

깊이 들어가면 경제체제, 인간의 욕심 등등 많은 이야기와 공부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지금 현실이 그렇게 되어있더라고요. 

 

그 뒤로, 저는 꽃꽂이를 대하는 마음이 좀 너그러워졌어요. 그렇게 태어난 꽃들을 최대한 건강하게, 꽃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최대한 온전하게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했거든요.

하지만, 이때까지도 꽃이 꼭 필요한 자리에만 꽂았어요. 문득 꽃이 보고싶으면 꽃가게를 들러서 마음껏 둘러보고 다니고요. 그러다가 한두 송이 제게 오는 아이들이 생기면, 집에다 꽂아두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살던 집은 열한평이었어요. 서촌의 다세대 건물이었는데, 그래도 나름 방이 세 개에 베란다도 있고요, 안방에 크게 나있던 남향 창이 너무나도 감사하던 곳이었어요. 지금도 참 그리운 곳입니다.ㅎ

그래도 5단 책꽂이가 열한개나 되고, 다른 짐도 있어서, 이것저것 채워 넣다 보니 아주 넉넉한 공간은 아니었어요.

가끔씩 지쳐 돌아와 신발을 벗고 들어서려면, 온 집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느낌이 들어서 헉! 하고 놀랄 때가 있었지요.

 

그럴 때, 제게 위로가 되고, 산과 들을 가져다 주는 존재가 바로 한송이 꽃이었어요. 둘 곳이 마땅치 않아 겨우 창 아래 구석에 작게 놓아둔 꽃. 그 꽃 한 송이가 모든 것을 다 편안하게 만들어주더라고요.

그 경험을 한 뒤로, 이 꽃 한 송이는 집안에서 제가 움직이는 모든 동선에 함께 했어요. 부엌에서 식사 준비할 때, 작업할 때, 밥 먹을 때, TV 볼 때 등등 빠진 곳이 없네요.

 

그 뒤로, 작은 꽃 한송이는 저뿐만 아니라, 제 작은 집에 찾아온 모든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위로와 기쁨을 주기 시작했어요. 그때 그 꽃 한 송이의 가격은 1,300원이었어요. 그 아이는 보름 정도 저와 함께 있어주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 셋이 각자 가지고 있던 꽃들을 모아서 다시 꽂아보았어요. 막 신나서 흥이 넘친 아이들이에요. ^^*

 

꽃이 주는 위로와 에너지를 경험한 저는, 이제는 꽃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침봉에 꽃을 꽂지는 않아요. 하지만 한두 송이의 꽃은 늘 제 곁에 있어요. 매일 깨끗한 물로 갈아주고, 바람도 느끼게 하고, 강한 햇살은 비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리고 꽃이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공간을 주는 것을 잊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 저는 꽃꽂이를 시작했어요.

선생님을 모시고 배운 것도 아니고, 학원을 다니거나 자격증을 딴 것도 아니지만, 용감하게 그리고 기쁘게 꽃을 꽂습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할 정도록 꽃을 소비하지는 않지만, 꽃이 주는 기쁨을 최선을 다해 감사히 누리려고 노력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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